[2026 매일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작] 매트리스 케어 근무 일지 / 장다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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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HELLO 작성일 26-04-24 23:33 조회 2 댓글 0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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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새끼고양이분양 이야기의 엔진: “보지 않기”로 버티던 화자가 “보게&rdquo되는 순간
초반 화자는 직업을 이렇게 정의해요.
사람과 덜 부대끼고
동선을 조정할 수 있고
눈을 최대한 덜 마주치며
‘적당한 온도’로 인사하고
할 일만 하면 되는 직업
즉 이 화자의 삶은 관계의 온도 조절로 유지됩니다. ‘홈케어닥터’라는 직함도 사실은 정서적 거리두기를 도와주는 가면이에요. 그런데 매트리스를 “막 세우려는 순간”, 침대 프레임 아래에 있던 여자가 손으로 입을 막아버리죠.
여기서부터 이 소설은 아주 단순한 한 줄로 돌기 시작합니다.
“나는 원래 안 보려고 살아왔는데, 이제 ‘봐버린 사람’이 됐다.”
이때 공포의 본질은 “여자가 있어서”가 아니라 내가 내 의지와 무관하게 ‘증인’이 됐다는 것입니다. 화자가 느끼는 한기(“머리만 뽑아서 겨울 산 정상”)는 외부 사건보다 자기 좌표가 갑자기 새끼고양이분양 이동한 감각에 가까워요.
2) 매트리스의 상징: “사이”의 폭력, “위/아래”의 계급
이 소설에서 매트리스는 단순 침구가 아니라 사람을 숨기고, 사람을 덮고, 사람을 분리하는 장치입니다.
여자는 “침대 프레임 아래”
부인은 “침대 위의 생활”
남자는 “결혼사진 속 얼굴(부재하지만 권력인 존재)”
화자가 중간에 던지는 상상—“매트리스를 패티 삼아 두 여자가 햄버거 빵마냥”—는 과장처럼 보이지만 정확히 이 소설의 구조를 말해요. 가정이라는 질서가 한 사람의 욕망을 가운데 두고 위/아래로 배치되는 것. 그리고 화자는 그걸 청소 노동자의 몸으로 ‘실물처럼&rsquo들어 올립니다.
그래서 이 작품의 긴박감은 도덕적 분노보다 물리적 구조에서 오죠. “들어 올리면 드러난다.&rdquo이 단순한 규칙이 계속 목을 조여요.
3) “케어”의 역설: 닥터는 치유자가 아니라 ‘흔적 처리자’가 된다
직업은 매트리스를 “청소”하는 일인데, 새끼고양이분양 사건이 발생한 뒤부터는 사실상 관계의 먼지를 처리하게 됩니다.
컬비 청소기의 “큰 소리”로 외벽을 세우고
매트리스를 세워 “내벽”을 치고
커버로 여자를 숨기고
침입을 대비하고
빠르게 마무리하고
필터를 지퍼백에 담아 “증거”처럼 보여준다
이 장면이 무섭고 웃긴 이유는, 화자가 범죄를 돕는 것도, 정의를 세우는 것도 아닌 애매한 위치에서 ‘서비스’의 논리로 움직이기 때문이에요. “서비스로 패치를 세 개나 더&rdquo챙겨주는 손이, 동시에 어떤 면에서는 범인의 탈출을 도운 손이 되어버린다는 점이 소설의 윤리적 불편함을 확실하게 남깁니다.
여기서 ‘닥터’는 치료자가 아니라, 위생·정리·설명의 언어로 현실의 균열을 덮는 사람으로 비틀려요.
4) K의 기능: 과거 연인이 아니라, 화자 내부의 “탈색된 믿음”
이 소설이 단순 불륜-해프닝으로 끝나지 않는 건, 중간중간 K가 계속 끼어들기 때문입니다.
“노오란 주스색으로 새끼고양이분양 탈색하고 나타났던 K”
번호를 외우지 않는 K
조수석에 앉아 있던 K
밴드의 ‘있어 보이는 음악’과 ‘사실 뭔가 없음’
“진부한 이별”로 떠나간 K
K는 사건과 직접 관련 없어 보이는데도, 반복적으로 호출되며 현재의 여자와 겹쳐져요. 이게 중요한 이유는:
화자가 이번 사건에서 느끼는 불안의 핵이 **‘불륜&rsquo자체가 아니라 ‘믿음의 붕괴’**이기 때문입니다.
밴드가 ‘뭔가 있는 척’하다가 결국 해산하는 과정, K가 믿음을 던져주다가 떠나는 과정은, 지금 화자가 마주한 “가정의 세팅”과 같은 계열의 문제(겉의 구조/안의 공허)를 만듭니다.
그래서 현재의 여자는 실제 인물이면서 동시에 K의 그림자가 투사되는 스크린이 됩니다. 화자는 그녀를 ‘판단’하려다 번번이 실패하고, 대신 자기 과거의 감각(방탈출의 스릴, 홍대의 좌표)을 떠올리죠. 이때 소설은 불륜을 다루는 게 아니라, 화자 새끼고양이분양 자신이 어떤 인간인지 드러내는 방향으로 갑니다.
5) “고양이(먹돌/몽샤)&rdquo서사는 왜 이렇게 길게 들어오는가
여자의 고양이 이야기는 일부 독자에겐 “너무 길다/주작 같다”로 느껴질 수 있는데, 이 소설 안에서는 기능이 명확합니다.
윤리적 언어를 ‘생명 돌봄’으로 치환불륜/상간 같은 단어를 “내핵까지 밀어 넣고&rdquo고양이-양육-상실-분양-재회로 서사를 다시 짜요.&rarr즉 여자는 자기 행위를 ‘사랑’이 아니라 **‘돌봄의 연쇄’**로 설명합니다.
**이중 이름(먹돌/몽샤)**로 ‘평행 세계’의 논리를 만든다“각자의 세계에서 잘 산다”, “래빗홀이 열린다&rdquo같은 말은 죄책을 지우는 기술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이 작품 전체의 핵심 이미지—겉으로는 말끔한 가정, 밑으로는 숨은 세계—를 반복합니다.
그래서 이 고양이는 사실상 ‘매트리스’와 같은 역할을 해요“사이”에 놓여 있으며, 이름이 바뀌고, 누군가의 세계를 오갑니다.먹돌/몽샤는 ‘숨김/노출’의 동물 버전입니다.
6) 소리와 빛의 연출: 새끼고양이분양 “배우 출신 작가”의 무대 감각
이 작품은 장면 전환을 소리로 찍어 넣는 방식이 탁월해요.
청소기 소리로 “외벽”을 세움
현관의 “철컥, 딸랑!”이 금속처럼 날이 서서 공간을 “베어냄”
마지막의 고양이 방울 “딸랑”은 포근하고 작음
소리가 곧 위협의 강도이자 현실을 자르는 칼날로 기능하죠.빛도 비슷해요. 대낮의 햇살이 “따뜻함”이 아니라 “수술실 하얀 불빛”으로 묘사되면서, 이 사건이 단순 연애 스캔들이 아니라 소독/노출/적발의 공포로 전환됩니다.
7) 후반의 가장 큰 묘수: “여자는 사라지고, 화자만 남는다”
잠복을 같이 해주고, 여자가 뛰어 올라가고, 그 뒤에 화자는 초조해져 문을 두드리지만—결국 아무것도 확인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그 여자가 없을 거라는 확신”을 가져요. 이때 중요한 건 사실관계보다 화자의 감각입니다.
그는 ‘설명할 수 없는 확신’을 느끼고
결국 새끼고양이분양 홍대로 가서 “내 좌표”를 확인하고
4개월 뒤 다시 가서 “전혀 바뀌지 않은 집”에서 청소를 합니다
여기서 사건은 미스터리로 남고, 대신 독자는 이런 질문으로 밀려가요.
여자는 실재했나?실재했다면 왜 사라졌나?아니, 더 중요한 건—화자는 왜 “굳이&rdquo거기까지 갔나?
즉 결말부는 사건의 해명보다 화자의 내면적 기울기를 남깁니다. “근무 일지”라는 제목이 여기서 빛나요. 이 모든 게 근무 중 사건이면서 동시에, 그의 삶(홍대, 밴드, K, 관계)의 먼지가 뒤집힌 하루였던 거죠.
8) 마지막 장면: “블랙박스 확인 &rarr웃음(눈물 날 정도)”의 의미
작품이 가장 강하게 열어둔 대목이 여기입니다. 왜냐하면 ‘블랙박스’는 통상 진실을 확정하는 장치인데, 이 소설에서는 그게 반대로 작동하거든요.
보통이라면: “봐라, 증거다”
그런데 여기서는: “한참을 넋 놓고 보다가 웃었다. 눈물이 날 새끼고양이분양 정도로.”
이 웃음은 여러 층으로 읽혀요(작품이 일부러 복수의 해석을 허용합니다).
너무 말이 안 되는 현실을 ‘기록’이 확인해 버렸을 때의 웃음
내가 증인이라 믿었던 것이 사실은 내가 만든 서사(투사/망상/편집)였을 때의 웃음
혹은 ‘진실’이 있다고 믿었는데, 기록은 아무것도 확정해 주지 않을 때의 웃음(화질/각도/소리의 공백, 혹은 결정적 순간의 부재)
어떤 해석이든 공통점은 하나예요.
이 소설에서 ‘진실’은 구해지지 않고,대신 화자의 세계만 더 선명하게 무너진다.
그래서 마지막은 해결이 아니라 탈진실적(혹은 반-확정적) 엔딩으로 남고, 독자는 그 빈칸을 ‘자기 윤리’로 채우게 됩니다.
9) 이 소설의 핵심을 한 문장으로
“말끔하게 정리된 가정의 표면을 들어 올리는 순간, 숨겨진 세계가 튀어나오고, 그걸 본 노동자는 공모자가 되며, 기록(블랙박스)은 진실을 주기보다 오히려 더 큰 새끼고양이분양 공허를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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